Pink Bow Tie
  • 카르망의 서랍
  • 2020. 8. 1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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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시작을 쥐어 준 겨울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카르망의 서랍

     

      지독하게 불운한 삶이었습니다. K의 인생을 정의하자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죠. K가 죽은 날에도 그의 시신을 수습하러 온 이들과 무슨 일이 났나 싶어 수군대며 구경하던 이들만 가득했으니 말입니다. 불운한 것일까요, 불행한 것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K의 장례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K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행위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향 냄새가 짙게 찬 그곳의 공기는 무거웠습니다. 무거운 공기를 뚫고 인기척을 내며 들어온 이는, K의 사건을 맡은 담당 형사였습니다. 네, 그는 불쌍한 K의 장례식에 와준 유일한 조문객이었습니다.

     

      K의 사인은 자살, 하지만 형사는 자살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K가 빚에 허덕이며 살았어도, 갚으려는 의지를 보였으며 책상 위에는 하와이로 가는 티켓이 놓여있었습니다. 외부인의 출입 흔적이 없고, 원한을 살 만한 인물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자살로 결론이 내려졌지만, 형사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K를 사랑해도 죽일 수 있는 이가 있지 않을까?

     

      형사는 다시 K의 집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옷장 안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했죠. 형사는 신대륙를 찾은 콜럼버스처럼 기뻐했습니다. 자물쇠가 걸린 작은 서랍이었습니다. 이 안에 무슨 단서가 있지 않을까요. 형사는 하늘에 있는 K에게 양해를 구하고, 무력으로 자물쇠를 망가트렸습니다. 힘겹게 열린 서랍에는 K가 사용하기에는 연륜이 있어 보이는 촌스러운 분홍색의 립스틱이 가득했습니다. 열 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양이었습니다. 수북하게 쌓인 립스틱 아래는 깨진 액자 속에 담긴 가족사진을 발견한 형사의 눈가는 뭉개졌습니다. K와 K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진 속 여자의 얼굴은 촌스러운 분홍 립스틱으로 칠해져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카르망의 서랍을 숨기고 살았던 K는, 사랑하던 어미에게  生을 끊임당한 지독하게 불운한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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